[산청 동강-수철구간] 이사가기 싫어요. 캐지말고 사세요 제발요~

작성자
master
작성일
2021-06-18 15:51
조회
1107
여름의 향기가 풍기면 계곡을 끼고 걷는 동강-수철 구간이 참 좋다

둘레길의 모든 계절이 좋지만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그렇다.

쌍재를 지나면 높다란 암반을 또 넘어야 한다.  앞을 떡 가로막은 이 커다란 암반을 어찌 올라가나  걱정하며 가까히 가보면 딛고 올라갈 수 있는 암반계단이 있다. 자연이 만들어준 계단이 아니라 주변의 돌을 옮겨다 손으로 일일히 쌓아 올린 수제 암반계단이다. 둘레길을 오픈한 초창기에 설치된 이 계단이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탄탄히 그 자리를 지지해 주고 있다.



긴 산철쭉 군락을 지나다 보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은방울꽃들이 향기를 뿜어내고 이에 질세라 둥글레 군락도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그러나 "쉽게","당연히" 라는  말은 함부로 하면 안되겠다. 많이 발견된다고 해서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니까..

지리산둘레길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쉽게 살아내는 것들이 없다.  사는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은 땅 속에서는 치열하게 뿌리 전쟁을 하고 있을게다.  해마다 은방울군락의 영역이 밀려나는 것도,  흔하게 보이던 은대난초가 어느 해에는 보이지 않는 것도, 올해는 은방울 꽃들을 쉽게 볼 수가 없는 변화가 매년 감지된다.

지리산둘레길의 들꽃조사를  3년 전부터 해 오고 있다.  같은 해 지리산둘레길이 들꽃이 있는 가장 긴 트레일로 기네스에도 등재가 되었다 . 일회성 타이틀이 아니기에 지금까지 꾸준히 각 구간의 군락지,  월별 개화 개체들을 조사하며 그 변화를 계속 관찰 중이다.

아직 찬기운이 가시지 않은 봄에 주변이 아직 초록빛이 덜 돌때, 그 암반  그 자리에는 항상 새싹이 일찍 올라왔었다.  여린 잎으론 그게 무엇인지 분간하기 힘들어 꽃이 필때까지 기다리다 결국 "기린초"임을 확인하였다.

3년이 지난 올해는 이틀 간격으로 그곳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어김없이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을 봤는데, 이틀 후에는 흔적도 없다. 아니 흔적이 있다.  "캐간 흔적"

자연에 두고 보면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데, 얼마나 고약한 심보를 가졌으면 내 집에다 갖다놓고 혼자만 보려하는 것일까?

너무도 황망하고 화가나서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나온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육두문자 대신 고약한 심보를 가진 그 누군가의 공간에서 잘 살아내길 바라는 맘이 간절하다.

제발 캐지말고 사세요.. 커피 한잔 보다 싸다고 하면 맘을 바꾸실까요?

[2019년]

[2020년]



[2021년 강제이사 이틀전]



[없어졌다... 캐간 흔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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