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후기

둘레길 #01 주천-운봉

작성자
후곡
작성일
2012-12-11 17:23
조회
23989

 

 

* 지리산 둘레길 #1 주천-운봉

* 14.3Km / 주적거리 14.3Km

* 2012.10.7. 일요일 / 6시간 소요

 

* 주천 원터거리 둘레길 주차장 / 내송마을 / 개미정지 / 솔정지 / 구룡치 / 용소나무 / 회덕마을 / 노치마을 / 덕산저수지 / 질매제 / 가장마을 / 행정마을 / 양묘장 / 운봉농협

 

 

 

 

그동안 일에 치여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했는데 오늘은 만사 제쳐두고 걷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길동무와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하자고 의기투합했다. 남원 인터체인지에서 운봉방면으로 가다가 주천으로 진입한다. 가을날이 화창하다. 우린 오랜만에 휴가나온 장병처럼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가을 맑은 하늘, 들판에 가득한 황금빛 출렁거림이 우릴 더욱 유혹한다. 세상사 복잡한 계산은 다 잊어버리라고 부추긴다. 더구나 젊은 날, 우리가 경도되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리산 품에 안겨 지냈던가. 이제 세상의 단맛 쓴맛 다 보고나서 고향을 찾는 마음으로, 혹은 어미 품을 떠나 세상 풍파 속에 휩쓸려 지내다 삶을 뒤돌아보는 나이가 되어 늙은 어머니를 생각하듯 우리는 지리산 품속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붉은 화살표만 따라가면 운봉에 이른다>

 

 700여리 대략 280Km 정도를 걷기로 작정했으니 느긋하게 맘먹고 출발하려고 한다. 서두를 필요 없이 주말마다 시간을 내어 이어 걸을 계획이다. 오늘은 일단 시작에 의미를 두고 1구간인 주천에서 운봉까지 걷기로 한다. 우린 이미 몇 년 전에 순천에서 서울까지 450Km 쯤을 걸어본 경험이 있다. 서울길에 비하면 이 지리산 둘레길은 훨씬 걷기에 좋을 것이다. 풍광은 물론 원초적인 지리산이라는 자연의 뿌리를 에둘러 도는 길인만큼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서울길에 비할 바 없이 더 행복한 길일 것이다. 아마도.

 

 

 

                                                                                                   

                                                                                      <물구나무 서기, 피로할 때 특효약>

 

                                                                                                             <정다운 표지기>

 

 주천에서 실개천 둘을 건너 도로를 가로 지른다. 내송마을 어구로 들어선다. 지리산 서북능선이 가을 들판 너머로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내송마을을 지나 개미정지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본격적인 숲길로 들어선다. 우리 말고도 몇몇 부부가 함께 둘레길을 걷는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걷는 모습도 보인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둘레꾼들이 모여들지 그것은 지리산의 품이 얼마나 넓을까 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길가에 심어놓은 구절초, 추수를 앞둔 황금 들판, 아침 햇살 그리고 숲으로 들어가는 둘레꾼들의 명랑한 웃음소리, 그 안에 우리도 함께이다. 이 얼마나 포근하고 행복한 나들이인가!

 

 

<우릴 감싸주는 지리산 서북능선>

 

 

<꽃과 벌>

 

 

<낮달>

 

 

< 저 아래 주천면, 우리가 출발한 곳>

 

 간이 장승처럼 생긴 통나무에 새긴 빨간 화살표만 놓치지 않으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오래된 소나무 숲길, 지천에 떨어져 깔려 있는 솔방울 들, 솔숲 사이로 간간이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 모자를 쓰지 않아도 좋을 솔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가을 햇살, 가끔은 아직 푸른 잎으로 남아 햇빛을 막아주는 활엽수의 투명한 녹색이 주는 감동, 어쩌다 눈에 들어오는 솔숲 사이로 우람하게 솟아있는 지리산 서북 능선의 이름 모를 봉우리들, 우연히 쳐다본 가을 하늘에 버려진 하얀 조각달이 떨어져 걷는 우리 둘의 거리를 좁혀주고, 서로 입장이 바뀌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령치를 넘는다.

 

 

<소나무 숲길>

 

 

 

노골적인 사랑을 표현하며 휘감고 있는 용소나무 연리지를 지나 사무락다무락길을 걷는다. 완만한 내리막길의 왼편에 쌓여있는 잔돌 무더기, 산행을 하다보면 등산인들이 쌓아놓은 케룬처럼 이도 비슷한 염원을 담고 있으리라. 옛 사람들이 갈 때는 무사히 다녀오겠다고, 올 때는 잘 다녀왔다고 돌을 얹어 놓고 마음을 모아 빌었으리라. 사무락다무락! 참 아름다운 말이다. 계속 내리막 길을 걸어 숲길이 끝나는 곳에 회덕마을이 왼쪽으로 펼쳐진다.

 

 

<다정하게 걸어가는 여자와 남자>

 

 

 

<덕산저수지가 있는 풍경>

 

 길동무와 난 정자나무쉼터에서 산나물비빔밥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주천에서부터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만나고 헤어졌던 두 부부를 거기서 또 만났다. 200년이 더 된 정자나무가 개울을 뒤덮을 정도로 가지를 뻗어 그 그늘이 시원하다. 비빔밥에 막걸리 한잔. 행복한 점심. 다시 걷기. 포장도로를 걸어 노치마을로 접어든다. 마을 앞을 바짝 붙어 지나며 건너편에 펼쳐진 지리산 서북 능선에 해당하는 고리봉 만복대에서 운봉 쪽으로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바래봉 능선을 조망하며 걷는다.

 

 

<덕산마을과 바래봉 능선>

 

 

<가장에서 행정으로 가는 제방길>

 

 

<고리봉에서 왼쪽 운봉 쪽으로 이어지는 바래봉 능선>

 

 

 

<행정마을로 가는 벚나무가 있는 제방길>

 

 노치마을을 벗어나자 곧 덕산저수지가 오른편 들 아래로 펼쳐진다. 다시 소나무 숲이 시작되는 조그만 언덕이 질매재인가 보다. 그 언덕을 넘어 왼편으로 가장마을이 나타난다. 가장마을을 빠져나와 덕산 마을 입구에서 제방길을 탄다. 왼쪽으로는 국도를 바라보며 오른 쪽 개천 건너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며 걷는다. 가을 들꽃이 제방길에 지천으로 피어있다. 길동무는 잘도 걷는다. 30년을 함께 살아온 저 길동무가 앞서서 걸을 때면 그 뒷모습이 왠지 낯설어 보일 때가 있다. 내가 풍경에 빠져 사진을 찍다보면 그녀가 점점 멀어질 때가 있다. 이러다 우리 영영 멀어져버릴 것 같은 아득한 느낌, 자연 속에서는 이렇게 본질적인 감각이 엄습해올 때가 있다. 정직한 육감이다. 나이 들어 가다보면 그 느낌은 필시 우리에게 필연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길동무와 거리를 좁혀야겠다. 삶에 대한 아득한 이 느낌을 안온하고 포근한 감촉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호흡하고, 함께 숨쉬는 평온한 일상도 어찌 보면 치열한 투쟁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걷기 좋은 가을 제방길>

 

 

<운봉에서 주천행 버스를 기다리는 길동무>

 

<운봉에 들어서자 길가에 쌓아놓은 땔깜이 정겨웁다>

 

 행정마을까지 줄곧 제방길이다. 왼편으로는 벚나무가 끝없이 자라고 있다. 봄철 벚꽃이 활짝 피어 있는 이 길을 상상하면서 길을 간다. 햇볕이 따갑다. 행정마을을 지나 다시 제방길로 접어든다. 운봉까지 이어지는 제방길을 벗어나 양묘장으로 접어든다. 내가 좋아하는 목백합 나무 어린 묘목이 넓은 포장에 빽빽이 자라고 있다. 멀리서 보면 가을 배추밭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코스모스, 목백합 포장, 바래봉 능선이 한 폭의 가을 그림이다. 오늘의 목적지인 운봉 농협으로 향한다. 한 시간 동안 버스를 기다려 주천행 시골버스에 몸을 싣는다. 하루를 걷고 나면 가득 차오르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성취감! 우리는 아침보다 더 좋은 사이가 되어 귀로에 오른다.   

 

<운봉 입구 양묘장 길>

 

 

<양묘장의 목백합 나무 포장>                                                다음까페 <마음의 고향, 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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