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후기

힐링로드의 병태와 영자

작성자
임경희
작성일
2014-10-07 22:42
조회
31479

시작은 그랬다.

상쾌한 바람과 햇살이 마구 유혹하니, 또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구나.

역마살 영자가 숙소를 검색하다가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같이,

지리산 산속에 떡 하니 누워있는 모양의 숙소를 발견했다.

온통 하늘과 숲뿐 일 것 같은 거기 베란다에 퍼질러 앉아 낮엔 향기로운 차를 마시고, 밤엔 아무 술에라도 취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리산 둘레길을 들쳐보다가 힐링 로드 대 장정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발견했다. 부산, 영남 지역방송이 주최하는 3박4일 일정의 참가비 전액무료인, 걷기행사로

사연을 보내면 선발해서 참가자격을 준단다.

앗 ~~싸 병태도 행사기간동안 휴가 낼 수 있다니까, 재빨리 사연을 써 보냈다.

마감 전날이었다. 여태껏 받아 온 문학수업은 이럴 때 진가를 제대로 발휘한다.

그까짓 꺼 이쯤이야 단숨에 술술, 누가 봐도 그럴 듯하게 써 내려간 후,

병태 것도 병태가 쓴 것처럼 간절하게 써 보냈다.

그리고 열흘 후, 둘 다 참가자로 선정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떠나는 날은 예고대로 비가 몹시 내린다.

완주 -순천 고속도로의 수많은 터널이 그리 반가웠던 건 처음이다.

일단 구례센터에서 45명의 참가자가 모두 모인단다.

15명이 한 팀으로, 총 세 개 팀이 각각 다른 구간을 걷다가 마지막 날은 화개장터에서

만나 유랑극단이란 텔레비전 프로에 참가하는 일정이란다.

배정받은 3팀에는 다양한 연령대와 전국 각지에서 모인 분들로 구성되어 대충 훑어봐도 꽤나 흥미로워 보인다. 모자, 물병을 꽂을 수 있는 복대, 수건에 비옷, 간식까지,

가 보진 못했지만 마치 군대보급품처럼 줄줄이 많이도 나눠준다.

나흘간 팔요 한 것들을 다 짊어지고 걸어야했기에 짐을 되도록 줄여야 했는데 오히려

늘어서 배낭은 곧 터질 거 같다.

참가자15명에 진행요원3명은 버스타고 이동,

장항마을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오후 두시 반.

 

둘레길 3코스 5분의2지점-경사도 15도 오르막 길.

오르막길이 시작되면 영자는 거의 반 협박으로 끌고 다니는 병태눈치를 살살 보기 시작한다. 병태지수 -비교적 맑음.

비는 이제 안개비 정도로 걷기엔 오히려 너무 좋다.

일행은 아직 서먹했지만 눈빛과 몸짓으로 서로 배려하며, 나흘간의 인연을 소중해 한다.

길은 완만한 오르막길로 이어지더니 현란한 노랑을 선사한다.

다랑이 논이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산과 어우러져, 구불거리는 모양새의 눈 시린 노랑.

다랑이 논을 마주하니 불현듯 고흐가 생각난다.

눈앞에 펼쳐진 정다운 우리 산하가 고흐의 화법으로 그려 낸 그림으로 보여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지난해에 떨어진 묵은 낙엽 위에 사뿐히 올라앉은 구절초 한 송이를 그냥 못 지나쳐 찰칵, 사진도 찍어가며 길을 걷는다.

600년 되었다는 마을 보호수, 느티나무가 한없이 미더워서 도닥도닥 쓰다듬어주고, 또 다시 걷는다. 등구재 500m전 -경사도 45도. 병태지수 -매우 흐림.

곧 터져버릴 배낭처럼 배낭임자도 터질 듯 부풀기 시작함.

다행스럽게 터지기 일보직전 내리막길 시작.

무사히 첫날 숙소인 산촌생태마을에 도착한다. 소요시간- 3시간 반 , 거리-8.5km.

 

여자 5인1실, 남자 4인1실.

수학여행 때 이후로 이런 종류의 잠자리는 처음인 것 같아 엄청 불편하다.

영자가 유독 예민한 부분이 잠자리인데, 나이가 먹을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요리연구가라는 그곳 쥔장이 지리산 나물과 야채로 차려낸 음식은 환상적이다.

주부로 요리해 온, 34년을 아프게 자책할 만큼 놀랍다.

 

식사 후엔, 귀농해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젊은 시인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있단다.

구름 때문에 별을 못 본 게 아쉬웠지만, 달디 단 밤공기를 마시며 도란도란 걸어보는

깜깜한 시골마을은 도대체 얼마만인가?

시인은 초록칠판에 하얀 분필로 자작시를 적어놓고 향긋한 차를 내어준다.

진한 허브 향과 나직한 그의 목소리에 취하듯 몽롱해 진다.

30km이내에 30대 부부는 자기네가 유일하다는 말이 새삼스레 놀라웠다.

농사를 짓는 건 아닐지라도 농촌을 지키는 자로서의 자부심이 넉넉해서

보는 이들도 흐믓해 진다.

그런데 세계자연유산이라는 다랑이 논의 눈부신 노랑을 우리는 그저 바라보며

감탄하기만 했었는데 캐나다와 FTA가 체결되면서 수매가 되지 않아 진작 베어져야할

벼들이 수확시기를 놓치고 있는 거란다.

그 말을 듣자 저절로 고개가 떨구어 진다. 특히 다랑이 논에서 농사짓기란 도시인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할 힘듦일 터인데, 갈 곳을 잃어버린 노란빛에 우린 그렇게 철없는 환호성만

내질렀다니......

그 노란빛을 애끓게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의 참담함은 전혀 모르면서......

뉴스에서나 들었던 먼 소리를 코앞에서 마주대하니, 가슴이 저렸다.

그러나 그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엔 도랑물 소리, 벌레소리나 흉내내보며 어느새 키득거리고 있는 도시의 둘레꾼들은, 한낱 이방인일 뿐이었다.

이제 60도 오르막길보다 더 무서운 시간이다.

자보겠다고 귀마개, 안대로 중무장을 한 후, 불 끄고 누웠지만 잠은 와 줄 것 같지 않다.

양 백 마리는 택도 없고, 양 천 마리를 거꾸로 세어 봐도 정신이 너무 멀쩡하다

옆자리 누군가의 코고는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 같다.

몹시 힘들었지만, 밤이 지나면 오지 않는 아침은 없다.

 

둘째 날도 여전히 예쁜 다랑이 논길은 이어진다.

그러나 이젠 현란함보다는 처연한 노란빛, 왠지 슬픈 노랑이다.

산을 내려와 금계마을 느티나무 밑에 둘러앉아 간식 먹고, 자기소개하고, 막내들의 재롱 잔치할 때까진 정말 좋았다. 여유 있는 날이니 천천히 쉬며 가면 된다하여

모두 희희낙락 친구가 되었다. 25살 막내가 언니라고 부르며 애교를 부리는 바람에 눈물 나게 웃었고, 엄청나게 고마웠다. 병태지수 -수소풍선처럼 놓치면 마구 날아갈 것 같음.

 

그 후에 벽송사까지 이어진 산길도 제법 가파르긴 했지만 숲은 우거졌고, 걷기 좋은 흙길이라 쾌적하게 걸을 수 있다. 제2의 석굴암이라는 서암정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니

칠성계곡이다.

계곡 위, 칠성식당에서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을 먹는단다.

폭이 족히 100m는 될 것 같은 넓은 계곡에 마침 전날 내린 많은 량의 비로 인해

힘차고, 우렁차고, 넘칠 듯 기세 좋게 물이 흘러내리고 있어 가슴이 뻥 뚫린다.

그런 곳이라면 아무거나 먹어도 꿀맛 일 텐데 산채비빔밥은 단연 최고였고,

양은그릇에 담긴 차가운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켜니 산행의 피로 따위는 한방에 날아가 버린다. 그때까지도 다함께 행복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병태의 기분이 마구 날아갈 듯해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영자가 손 마이크를 들이댄다.

“누규~~탓?”

 

커피까지 마시고 푹 쉰 후 다시 배낭을 멘다.

으아악~~ 경사도 70도, 더구나 땡볕의 딱딱한 시멘트포장의 차도가 이어진다.

“난, 이런 길 젤 싫어” 입구부터 병태의 불쾌지수가 급상승 한다.

“이런 길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그냥 걸으세요. 남자답게 묵묵히.”

10분은 묵묵하다.

“나, 이런 길~~” 또 시작이다.

“옵빠!!! 10분밖에 안 걸었어. 다음엔 20분 참았다 징징대! 알았죠?”

모두 힘든 그런 길을 40분 정도 오른 후, 길은 산길로 이어진다.

앞서가던 아가씨가 뱀을 보고 비명을 지르니, 진행요원이 잽싸게 달려 나가

길 한 가운데에서 똬리 틀고 있던 뱀을 지팡이로 집어 멀리 던져버린다.

조금 있다가 이번엔 막내의 앙칼진 비명소리. 무지하게 큰 지네다.

길은 끝없는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이럴 땐 자동으로 읊조리는 양사언의 시조 한 수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아무려면 태산보다 높으랴 그까이꺼 뭐 하늘아래 뫼이겠지.

그러나 잊을만하면 다시 시작되는 병태의 불평.

“이건 둘레길이 아니지. 해발 6~700m는 족히 돼 보이는데.

거의 평지를 하루 네 시간만 걸으면 된다며? 또 나한테 사기 친 거잖아?“

헉헉대면서도 연신 투덜댄다. 이럴 땐 걸음을 빨리 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상책이다.

병태지수 -폭발전야.

 

지루하고 힘들게 오르막이 계속 되더니 드디어 내리막길 이다.

고생 끝. 행복시작.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내리막길은 바윗돌이 뒤엉킨 골짜기길 이었고

돌에는 이끼까지 끼어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내리막 경사도 만만치 않아 다시 고행의 연속이다.

일흔 살 큰 오빠의 다리가 자꾸 풀리자 삼십대 총각이 배낭을 대신 메고 부축까지 해 드린다. 또 한 청년은 험하다싶은 구역은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어른들과 여성들 보호에 여념이 없다. 이번 여행에 제일 큰 수확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리 건강한 것.

배려하고, 양보하며, 맑게 웃는 그들을 보며, 어른인 영자는 안도했고 한없이 행복했다.

그렇게 따뜻했지만 조심스러웠던 산행을 마치고 이젠 정말 고생 끝이라고 생각했더니

아직도 아스팔트 차도가 6k나 남았단다.

발톱이 빠질 것 같이 아프고 발바닥에선 열이 풀풀 나는 것 같다.

패잔병의 모습으로 그날 숙소에 도착했다.

산길 포함 총 18km. 소요시간 10시간.

 

힘들게 도착한 숙소에서 도저히 잘 수 없을 것 같다.

작은방 두 개에 여자 10명이 나누어 자고, 남자8명은 거실에서 자야 한단다.

게다가 욕실은 달랑 한 개. 병태지수-불안, 초조, 부글부글

첫날 2시간 남짓 자고 종일 걸었기 때문에 둘째 날은 푹 자야했다.

다행히 숙소가 마을이라 부근에 다른 방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병태가 잽싸게 나갔다 오더니, 방을 구했단다.

일행한테 죄송했지만 양해를 구하고 욕실 딸린 방에서 그날은 푹 잘 수 있었다.

 

셋쨋 날은 5코스 종점인 수철마을을 지나 산청까지 17.6km를 걸어야한단다. 게다가 길은 어제보다 더 험하다고 마구 겁을 준다.

그 바람에 50대 이상 아줌마 셋 중, 두 사람이 지레 포기해 버린다.

유일한 아줌마, 영자는 그래도 꿋꿋하다.

포기한 두 사람은 주최 측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오늘숙소인 산청센터까지 간다하여, 필요 없는 짐들은 그 차편에 보낼 수 있어서 배낭이 한결 가볍다.

 

호주에서 10년 살다왔다는 30대 진행요원, 철수의 구호에 맞춰 매일아침 체조로 몸을 풀었는데 형편없이 엉성한 철수의 체조시범에 호주체조는 그러냐며 한바탕 웃고 난 후 걷기 시작한다. 코스모스와 노란들판 파란가을하늘.

식상한 수식어를 붙여보지만 그래도 우리 가을 들녘은 넉넉하고, 상쾌하다.

 

20분 쯤 걸은 후 도착한 산청. 함양사건 추모공원에선 모두들 숙연해진다.

1951년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수행 중 군인들이 무고한 민간인을 마구 학살했다는데, 그 영령들을 모신 곳이다. 썰렁한 추모공원 구석구석을 돌며 향도 피우고 묵념도 해 본다. 소설에서나 봐 왔던 우리의 쓰라린 과거가 새삼 아파온다.

엄청난 예산을 들여 고통의벽, 희생자의 상, 위령탑등을 세워 놓았는데 참배객은 거의 없는 듯하다.

 

아픈 과거를 털어버리듯 서둘러 공원을 빠져나오니, 오밀조밀한 냇물이 흐르고, 예쁜 숲길이 이어진다.

‘이런 길은 너무 좋아’ 조금 전의 숙연함은 어느새 날려 보냈는지 병태가

병태지수 매김을 선명하게 해 준다. 병태지수-가을하늘처럼 쾌청.

적당한 오르막의 개울물이 흐르는 숲길.

누구든 머릿속이 맑아질 기분 좋은 길을 천천히 오르다 보니 폭포와 맞닥뜨린다. 상사폭포다. 폭포는 이틀 전 내렸던 폭우 덕에 미리 봐 두었던 사진보다 훨씬 폭포답다.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고, 물만 보면 주위시선 아랑곳 하지 않고 발을 담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영자는 물장구까지 치며 아주 신났다.

병태도 엉거주춤 옆에 앉아 함께 담근다.

발 마사지로 한결 가뿐해 진 발걸음은 경쾌하기 그지없다.

오늘 일정중 제일 가파르다는 산불감시초소도 가뿐히 오르고,

고동재는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휘리릭 날아다녔다.

 

가볍게 산을 하나 넘고 나니 이젠 또 다시 임도다.

그러나 어제의 임도와는 달리, 길옆엔 나무도 울창했고, 다니는 차도 드물어

걷기엔 최적이다.

걷다가 만나는 마을길목 평상엔 앉아 쉬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함께 앉아 쉬며 인사를 드리는데 혼자 사신다는 어르신들이 의외로 많아 마음이 편치 않다. 주최 측에서 매일 나누어 주는 간식이 너무 많아서 나누어드리면 굉장히 좋아하신다. 그리고 헤어질 땐 잡은 손 놓기 아쉬워 눈가가 촉촉해 지시는 분까지 있어, 우리와 헤어질 때 마다 우시는 어머니의 눈과 겹쳐져 가슴이 아프다.

 

5코스 끝인 수철마을은 쓰레기뿐이었던 마을 앞 도랑을 ‘물고기 노닐고, 아이들 수영할 수 있는 개울물’로 바꾸어 놓은 마을답게 아담하고 깨끗한 시골마을이다.

마을 앞 평상에서 흥겨운 파전과 막걸리파티가 있었는데 다음에 이런 기회가 또 생긴다면 근처에 계신 어르신이라도 모셔놓고 함께 했음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시 몇 개의 마을을 지난 후, 드디어 오늘 목적지인 숙소에 도착한다.

여전히 5인1실이었지만, 부근에 다른 숙소는 보이지 않고 연일 따로 자는 것도 눈치 보여 오늘은 일행과 함께하기로 한다.

게다가 오늘은 마지막 밤. 내일 티브이 프로에 모두 나가야하니 연습도 해야 하고 왕언니의 생일파티까지 있단다.

저녁식사 후에 모두 모여 Y.B(young boy)팀이 애써 만들어 놓은 종이구호를 클립으로 가슴에 고정 시킨 다음, 단체로 나갈 장기자랑 연습을 한단다.

안산댁이 춤이라면 타의추종을 불허한다고 나서서 맘껏 흔드는 바람에 쓰러지는 환자가 속출할 지경으로 웃는다.

이렇게 젊은이들과 한 팀이 되어 같은 목적으로 계획하고, 웃었던 적이 있었던가? 갑자기 40년 전 학창시절로 돌아가 M. T에라도 온 듯, 맘껏 즐긴다.

오래 오래 기억 될 소중한 시간이다.

그리고 연습 후 왕언니의 생일파티.

달랑 초코파이 케이크뿐인 생일파티였지만, 언니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는 젖는다. 병태지수고 뭐고, 그냥 종일 맑은 날이다. 또 다시 수소풍선이 된 병태가 같은 풍선인 왕언니의 술친구가 되어 그 자리에 있는 술을 깡그리 마시려고 해서 영자의 뱁새눈이 거의 사시가 돼 버린 것 빼 놓고는.

 

그 날은 이 가는 소리나 코 고는 소리가 별로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잘 잤나 보다.

 

마지막 날은 경호강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데, 최종 목적지인 성심원까지 세 시간쯤 걸린단다. 이젠 그 정도 평지를 걷는 데는 모두 이골이 났나보다.

즐겁고, 신나게 걷는다.

병태의입에서 정체불명, 국적불명의 노래가 마구 나온다.

흥에 겨우면 나오는 대로 흥얼대는 병태의 자작곡이다.

그나마 맨 정신이라 노래 소리가 작아서 다행이다.

취한 날엔 고래고래 떠들어 옆집 눈치 보느라, 해품달의 명대사 ‘그 입 다물라’며 두 입술을 꽈악 부여잡고 따라다녀야 했다.

 

그렇게 걷기를 마친 후엔 지리산 온천에서 목욕까지 시켜준다.

잠깐이었지만 따뜻한 온천수에 몸과 마음은 무방비상태로 풀어져버린다.

산뜻해진 몸과 마음으로 산뜻한 단복과 모자를 쓴 다음,

유랑극단이란 경남 부산방송 티브이 프로그램 녹화에 참가했다.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였는데, 평소엔 외면하던 프로도, 직접 참가하니 기대보다 흥겹다. 무방비로 풀어진 몸과 마음이라 더욱 신난다.

영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초대가수로 김수희, 김혜연이 등장했을 때보다 힙합듀오 배치기가 나왔을 때, 이번엔 병태의 눈이 찢어질 정도로 소리를 꽥꽥 질러댄다. 정작 팀은 연습한 보람도 없이, 무대 위라 긴장한 안산댁이 어젯밤 그 현란한 막춤 재현에 실패하는 바람에 인기상도 못 받았지만, 아무래도 그저 좋기만 하다.

 

그렇게 꿈같던 일정이 모두 끝나고 이젠 이별이다.

우연히 참가하게 된 힐링로드 걷기행사.

이렇게 전혀 몰랐던 남들과 함께 어울려 웃고 떠들며 걸었던 기억은..

없다.

뭐 그리 감출 것도 없으면서 왜 그리 벽 안으로 들어가 숨기에 급급했을까?

허물면 이리 상쾌한 것을.

함께 어울리며 누렸던 색다른 경험은 달짝지근한 추억이다.

싱싱한 되새김이다.

젊은 그들은 재바르게 카카오그룹이란 걸 만들어 사진을 공유하고

소식을 알려온다.

언젠가 슬그머니 잊어버리고 말겠지만, 지금은 많이 반갑다.

 

느리게 걸으며 자연과 마을과 문화를 만나고, 끝내는 자기와 만나 영혼의 위안을 얻는 순례의 길이 되었으면 한다는 둘레길.

속도의 문화를 느림과 성찰의 문화로, 수직의 문화를 수평의 문화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소망을 담았다는 둘레길.

그 길을 함께 걸었던 맑은 사람들과, 그 길에서 만났던 선량한 얼굴들.

그리고 처연하지만 눈부셨던 노랑과, 맑은 개울의 재잘거림 때문에

한 동안 영자는

무지하게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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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3

  • 2014-10-08 10:30

    나는 왜 항상 영자의 놀잇감 신세밖에 안될까?


  • 2014-10-08 15:29

    멋진글 잘읽었습니다.
    엄마의 환희가 아직도 집에 돌고 있습니다.
    함께할수있어서 감사했습니다^^


  • 2014-10-10 10:44

    마치 눈앞에 펼져진듯 생생합니다. 정말 좋았을 시간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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