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척마을은 낮은 돌담이 많아 유난히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걷는이는 좋지만 사시는 분들은 집 안이 훤히 보이는 게 불편하겠다 싶다. 이 마을에는 유난히 개가 많다고 느껴지는 것이 첫번째 집에서 짖고 두번째 집에서 짖고, 개 짖는 소리가 끝없는 돌림노래로 들린다. 구례지역의 둘레길은 작년의 수해여파로 곳곳이 패이고 무너지고 상처투성이지만 복구와 회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계척마을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피해가 적은 편이지만, 마을이름이 유래된 이 작은 시냇물은 보강공사 중이라 맑은 물 대신 흙탕물이 흐르고 있다. 마을을 지키는  300년 넘은 당산나무를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들을 꾸짖는 듯한 얼굴도 보이고, 긴 시간 동안 만들어온 단단한 근육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 크기와 위엄에 멀리서만 보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가까이서 구석구석 살펴보면 재미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올해는 산수유가 일찍 개화를 했다.

마을 초입부터 시작된 노란 산수유꽃이 참 따스하다.

봄철 들꽃들은 유난히 작다. 쭈그리고 앉아 자세히 들여야 보아야 올망졸망 이쁜 모습을 볼수 있다. 걷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지나치기 쉬운 아이들이다.

걷다가 저멀리 파아란 주단이 깔려 있으면 잠깐 멈춰서 자세히 들여다보라.

‘개불알풀’이다. 원래 이름이 ‘봄까치꽃’인데 일본어(열매의 모양)를 직역하다보니 이런 민망한 이름이 붙었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길조이니

봄까치는 분명 “좋은 봄소식”이다.

지리산둘레길을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다. 지리산에 에둘르는 길답게 산길을 지나 다음 마을로 연결된다. 길을 걷는데 등산화를 신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체육공원을 지나 약간 가파른 숲길을 만난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듯 하면 하늘을 찌르듯이 꼿꼿이 서 있는 편백숲을 만난다.

전 날 제법 큰 비가 내렸다. 봄비를 잔뜩 머금은 편백숲과 푹신한 바닥은 출발할 때 가지고 있던 편두통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화창한 오후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울창한 숲 속은 약간 어둡다. 그리고 오감을 자극하는 피톤치드향을 맡으며 의자에 앉아 잠깐의 휴식을 즐긴다. 가지고 간 쌍화차 한잔은 커피향 부럽지 않았고 입가심으로 마신 따뜻한 맹물조차 달게 느껴진다.

이 후 길은 급류에  휩쓸린 흔적들과 미처 치우지 못한 쓰레기들이 자주 보인다. 가지고 간 쓰레기봉투가 금방 차 버린다. 계척마을이 끝나고 만나는 밤재입구 부터는 지난 폭우에 산사태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다.  길 자체가 끊어지고 지금은 콘크리트옹벽을 세우는 큰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차량과 포크레인 소음이 뒤섞인 위험한 구간이라 공식적으로 폐쇄한 구간이다. 밤재길 모니터링 겸 올라간 길는 미끄럽고 위험구간 연속이다. 밤재 정상에서는 콘크리트옹벽작업 중이고 원래 있었던 쉼터와 둘레길 스템프함은 흔적도 없다. 다행히 이정목(벅수)은 그 자리를 지키고 길안내 역할은 제대로 하고 있다. 백의종군로 스템프함이 벅수에 붙어서 더부살이 중이다. 지리산둘레길은 이 구간을 폐쇄하였으므로 현재 스템프함이 없다. 길을 걷는 이들은 헷갈리지 말았으면 한다

주천으로 넘어가는 길 역시 길들이 많이 유실되고 곳곳이 산사태 흔적이다.

지난해 이 곳에서 들꽃모니터링을 하면서 노루귀 군락지를 확인했었다. 둘레길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훼손되지 않도록 매년 관찰해 왔던 곳이 있다. 이번 산사태로 그 곳이 피해를 입었을거란 걱정을 안고 위험했던 길을 오른 것이다. 원래 있던 군락지는 피해를 입어 흔적을 찾을 수 없고, 그나마 다행인 건 가까운 다른 곳에서 노루귀 몇 개체를 확인했다. 발빠른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도 있지만, 다행히 캐가거나 훼손의 흔적은 없다. 다행이고 고맙고 반가워서 코끝이 찡해진다.

급히 공사를 해 안전한 길을 빨리 만드는 것도 불안하기만 하다. 안전한 길을 위해 길은 더 넓혀질 것이고 아스팔트로 채워지다 보면 지리산둘레길다움이 사라질 거 같은 불안감이다.

반가운 노루귀가 건강히 한 해를 보내고 내년에도 더 많은 개체를 만나기를 그래서 봄에 만나는 흔한 들꽃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