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후기

지리산둘레길 완주

작성자
conolee
작성일
2019-05-24 15:11
조회
26513
2019.5.9.~5.11(2박 3일) 날씨 맑음

 

3년 전 2016년 4월 4일, 사십여 년의 길고 긴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전에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는 기운을 얻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지리산둘레길 걷기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오랜 기간 중단되었던 지리산둘레길 걷기를 이제 그 마지막 구간인 하동읍에서 원부춘까지로 마무리하려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박 3일간의 대장정이다.

여태까지는 언제나 1박2일이었다. 산청 덕산에서 처음 지리산둘레길 걷기에 도전할 때 2박 3일 일정으로 시작했으나 갑작스러운 무릎 부상 때문에 1박만 하고 서울로 되돌아왔다. 그 이후로는 줄곧 1박2일로만 지리산둘레길을 다녀왔다.

2016.4.4. 덕산 ~ 삼화실

2016.4.26. 동강 ~ 어천

2016.6.29. 동강 ~ 인월

2016.10.4. 인월 ~ 주천

2016.11.18. 구례 일주

2017.3.24. 성심원 ~ 덕산

2017.4.21. 구례 ~ 원부춘

2017.6.16. 주천 ~ 구례

이제 마지막 남은 하동구간을 친구와 둘이서 2박 3일로 마무리하려는 것이다.

 

새벽부터 서둘러 남부터미널에서 6시 반에 출발하는 하동행 시외버스를 탔다. 맨 앞 좌석에서 배낭에 발을 올려놓는 행위로 버스기사로부터 잔소리를 들어 약간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하동터미널에 도착했다.

지리산둘레길 하동센터인 사단법인 숲길 건물 옆으로 올라가 자동차 도로 오른쪽으로 해서 금하 마을 빌라 끝나는 지점에서 산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둘레길 표지목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한참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하동센터 관계자와 여러 번 통화한 후 겨우 지선 구간에 진입을 할 수 있었다. 역시 둘레길에서는 한눈팔지 말고 표지목에 집중해야 한다. 표지목을 지나쳐 버릴 경우 많은 시간과 체력을 소모해 버리게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흔하다.

서당마을에 도착해서 무인판매점에 들러 맥주로 갈증을 해소하고, 걷다가 쉬면서 먹을 막걸리 한 병을 구입했다. 무인판매점이 있어 편리하기는 하지만 관리가 다소 미흡해 아쉽다.

이번 둘레길 걷기에는 매실이 절정이다. 매실이 수확을 앞두고 한창 몸집을 불리고 있다. 하동은 녹차와 매실, 그리고 섬진강의 재첩이 가장 유명하다.

지리산둘레길은 옛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 다양한 길로 이루어져 있어 다채롭다. 그렇지만 지루한 임도나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길은 반갑지 않다. 걸을 때마다 가파르게 올라가야 하는 산길이 가장 힘이 든다. 서당마을에서 우계 저수지를 지나 신촌마을로 가는 길에서 만난 이팝나무 정자는 걷기에 지친 우리에게 시원한 바람을 곁들인 휴식을 제공한다.

신촌마을에서 신촌재를 넘어가니 먹점마을이다.

잘 가꿔놓은 산골매실농원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농원을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았다. 농원 안에는 옛날 묘지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할미꽃이 많이 피어 있다. 할미꽃도 개체 수가 줄어들어 보호 대상 야생초라고 한다. 농원을 가로지르는 계곡을 잘 관리해 깨끗한 냇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또한 매실청, 된장 등을 담아놓은 수많은 장독대와 강아지 들을 묶어놓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다니게 해서 키우고 있는 것이 너무 보기 좋았다. 음식도 정갈하게 차려 입맛을 돋운다. 싸리버섯, 취나물, 고사리나물과 더덕무침에 머위 쌈이 모두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라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산골매실농원 주인장은 이곳이 고향이라 지리산에 대하여 많은 애착을 갖고 있었다.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임산물이나 농작물을 마구잡이로 채취해가는 행위에 매우 분개해했으며, 반달곰의 지리산 방사 정책에 우려를 표시했다. 예쁘게 꾸며놓은 농원과 이름 모를 야생화, 분재, 마음껏 뛰어노는 강아지 등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음날 아침 더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목적지인 원부춘마을을 향했다. 먹점재를 지나 대축마을로 가는 길에서 멀리 바라보니 형제봉의 철쭉이 산을 불태우는 듯 온통 빨갛다. 곧이어 문암송이 눈앞에 나타났다. 너럭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600년 이상을 자란 높이 12m, 둘레 3m 이상의 거목 소나무인 문암송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날 수 있다는 강인한 생명력과 자연의 신비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문암송이 뿌리내리고 있는 너럭바위에서 내려다보는 악양 들녘과 섬진강은 한 폭의 수채화다.

축지교를 건너 밀과 보리가 익어가는 악양 들판을 가로질러 박경리 소설 「토지」의 배경인 최참판댁을 관람했다. 한옥과 초가집 등이 잘 관리되어 있었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언제나 악양 들판의 농사 현황을 파악하기 좋은 위치로 보였다. 최근 모든 사극이 거의 이곳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근처 식당에 들러 누룩향이 진하게 배어있는 동동주를 곁들여 서리태 콩국수로 배를 채우고 입석마을을 거쳐 형제봉 능선까지 헐떡이며 올라갔다. 입석마을에서 윗재까지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여러 번 쉬면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오르막이 급경사여서 힘겨운 둘레길 코스 중 하나이다.

원부춘마을로 내려가서 택시를 타고 화개로 이동하여 화개 터미널 인근 모텔에서 숙박한 후 다음날 버스로 하동읍으로 원점 회귀했다. 출발시간의 여유가 있어 하동시장에 들러 요즈음이 일 년 중 가장 맛있다는 재첩국을 택배로 주문하고 하동역에서 열차로 귀경했다.

마지막으로 걸은 지리산둘레길이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볼걸, 좀 더 주변을 돌아보며 걸을걸,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걸, 계획된 일정에 맞추다 보니 언제나 바쁘고 쫓기는 듯 걸었다. 이제 비로소 완주는 했지만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내가 찜해 놓은 그곳은 다시 걸을 작정이다.

지리산둘레길 중 인도와 차도가 구분이 없는 길, 급경사가 지속되는 길 등은 우회로를 만들거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고, 특히 오미~난동 구간 중 구례센터에서 연파마을 사이의 길은 축사로 인한 악취와 시멘트 길로 자연을 즐기려는 둘레길로서는 부적합한 것 같았다.

사단법인 숲길로부터 「아름다운 지리산 사람인 숲속의 친구들」이라는 지리산둘레길 완주증을 받았다. 3년간 아홉 번에 걸쳐 다녀와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퇴직 후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한 가지를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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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6-04 16:59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귀한 글 잘 읽고 참조하여 둘레길가꾸는데 보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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