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후기

하동호 - 삼화실 구간

작성자
보헤미안
작성일
2012-09-10 08:20
조회
22439

 



2012 8 1


 


지리산의 계곡에서 답답했던 등산화를 벗고 맨발을 시원한 물에 담그니


불과 몇 시간 전 열대야 속에 밤잠을 못 잘 정도로 뜨거운 도시에 있었던


내 기억이 순식간에 물에 씻겨 내려가 버렸다.


 


2012년 휴가. 아내의 직장문제로 남들 다 휴가를 떠나는 시기에 떠나야만 했기에


고속도로는 명절 귀경 때보다 차가 더 밀렸다.


자동차에 내비게이터에 표시되는 도착 예정 시간상으로는 불과 4시간.


조금 늦어도 오늘 오후에는 지리산 둘레길 한 코스를 걸을 수 있을 것이라던 내 계획은


승용차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마자 포기해야만 했다.


 


끝도 없는 자동차의 행렬. 평소 지리산을 갈 때는 고속버스로 다녔기에 시간계획에 차질이 없었지만


오늘은 버스전용차선으로 막힘없이 달리는 대형 버스를 부러워하는 시선으로 바라 볼 뿐이다.


 


8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지리산 위태마을에 있는 둘레길 민박집.


지난 해 이 곳에서 이틀 밤을 지내고는 이 곳이 너무 그리워 아내에게도 멋진 밤을 선물해 주고 싶었기에


일부러 이 곳으로 찾아 왔다.


차 하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로 가다 보니 ‘하늘가애’라고 써 붙인 작고 노란 이정표.


그 옆의 다른 집은 마치 SOS 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지붕에 대형 글씨체로 ‘민박’이라고 써 붙인 것과 대조를 보인다.


 


마당에 차가 없는 걸 보니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먼저 도착해


1년 동안 조금 변한 황토방 지붕과 마당의 풀꽃들을 사진 찍고 있으니


주인이 도착하여 반가운 포옹을 나누었다.


집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바로 앞 계곡물에 마련된 파라솔 밑의 계곡물에 발부터 담그었다.


내가 온 환영행사인지 큰 검은날개 잠자리가 풀에 와서 앉는다.


신기해서 접사 촬영을 해도 날아가지 않는다.


 


조금 후 다른 예약자인 젊은 커플이 도착하여 같이 발을 담그고


또 다른 일행이 합세하는지 차가한 대 들어오며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내려 산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야생화를 한 묶음 꺾어서 계곡으로 내려 온다.


겉보기와는 다르네 하고 궁금해 하며 자기 소개를 하는데 대학에서 체육학과 교수이며


레크레이션을 가르친다고 한다.


나도 대학시절 그런 행사를 많이 주관했기에 내 호기심이 동했다.


 


같이 온 친구분의 소개는 더욱 거창하다.


전주에 4대 종교의 성지를 걷는 순례자의 길이라고 있는데 그 코스를 직접 이 친구와 같이 만들었단다.


나 같이 그냥 길 걷기를 좋아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코스의 새 길을 직접 다니며 개척했다는 그 들이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거기에 아내와 고향이 같아 이리 저리 맞추어 보니


역시 한국인의 인맥관계는 2.5 정도라 하더니 금새 아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주인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계곡물에서 정담과 시원한 맥주와 막걸리로 갈증을 해소하고,


정원의 식사테이블에 앉으니 지난 해 맛있게 먹었던 나물장아찌들이 상에 가득하다.


젊은 커플이 특별히 주문한 흙돼지 바비큐와


끊임 없이 이어지는 노래와 레크레이션 선생님의 즉흥 게임으로


밤이 이슥하도록 노는 동안 하늘에서 휘영청 보름달이 떠 오른다.


길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들이라 밤새도록 얘기해도 질리지 않는다. 


마침 차에 내가 출판한 책이 여유가 있어서 나누어 주고,


마치 논산훈련소에서 훈련 끝난 후 헤어지는 훈련병들이


제대 후 어느 날짜를 정해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하듯이 내년에도 8 1일 만나자고 다짐도 했다.


어쩌다 보니 지난 해도 8 1일 여기 왔었고 올해도 8 1일에 왔다.


 


다음 날 아침 모두 인사하고 지난 해 여름 여정을 마친 하동호로 찾아가는데


지난 해 날씨가 흐려 보지 못했던 청명한 자연 속의 아름다움이 구비 구비 펼쳐진다.


조용하고 맑은 하동호에 주차하고 다시 길을 걷는 여정에 올랐다.


 


하동호 저수지 주차장 옆에 하동호 이정표의 방향표시 중 오늘은 빨간 화살표를 따라 가야 한다.


다음 목적지는 평촌마을. 큰 돌 계단으로 시작되는 지리산 둘레길 11코스.


계단 아래로 내려오니 커다란 공터 옆에 넓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간편한 차림으로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천천히 산책하는 방향의 먼 곳에 넓은 논에서 파란 벼들이 자라고 있다.


 


벌써 더위를 느꼈는지 아내는 민소매 차림으로 걷기를 시작하고 나는 햇빛이 뜨거워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오늘 같이 뜨거운 날, 걷는 사람은 거의 없어 길가의 커다란 나무 그늘 밑 넓은 평상 벤치는 썰렁하다.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저런 곳에서 길게 누워 낮잠이나 잘걸..


 


우리가 걷는 길이 하동호 뚝으로 가는 막다른 길인지라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 듯 아스팔트를 침범하고 있는 칡뿌리의 줄기도 도로를 점령하고 있어도


누구도 치우지 않아 도로 위에 커다란 녹색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마 그대로 두면 도로 양쪽의 칡뿌리들이 어느 순간에는 이산가족 상봉을 할 것 같다.


 


가을이 아닌데도 길가에는 여물지 않은 파란 밤송이들이 가끔 떨어져 있다.


아마 엉덩이에 뿔난 밤송이들이 가출을 한 것이리라.


그러다가 나 같은 나그네들의 발에 부딪혀 으깨어지고 걷어 채여 어디론가 사라지겠지.


 


숲길 옆에 있는 깨끗하게 만들어진 자연 발효식 간이 화장실은 밭일을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나 같은 둘레꾼을 위한 것일까?


2009년 처음 지리산 둘레길 걸을 때는 이런 화장실이 별로 없어


어쩔 수 없이 숲 속에 들어가 급한 용무를 해결해야만 했는데 요즘은 이런 화장실이 가끔 보여 반갑다.


 


논둑길을 지나 평촌 마을에 도착하니 차가 다니는 도로를 지나치게 되어 있다.


시골마을에 카페는 촌스러운 다방이름에 ‘커피전문점’이라고 써 놓았다.


하긴 다방에 커피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다방에 커피가 전문일 수 도 있다.


길 가의 시골 집들의 담에서는 각종 나무와 꽃들이 즐비하다.


우리 집 베란다에 있는 많은 화분에는 매일 시간을 내어 물을 주어야 하는 아내의 고생이 심한데


이 곳은 저절로 무성하게 담장을 만드는 꽃과 나무들이 있으니 이 곳 주부들은 무슨 일을 하며 살까?


 


가다 보니 육안으로는 막다른 길인데 이정표도 없다.


그러나 멀리 냇가 건너편에 이정표가 작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작은 논둑길로 가야 하나 보다.


길 끝에는 냇가를 건너가도록 만든 정겨운 돌 징검다리가 놓여져 있다.


징검다리를 하나 하나 꼭 꼭 밟아 가며 고마움을 대신한다.


아마 비가 오는 날에는 조금 먼 곳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화월마을로 가는 길의 곳 곳에는 길을 내어준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농작물을 훼손하지 말아 달라는 둘레길 안내판이 자주 보인다.


비록 길가의 떨어진 밤톨도 그냥 두자.


길을 지나면 손 닿는 곳에 열리고 있는 감나무의 잘 익은 감도 그냥 두자.


똑 따서 그대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을 것 같은 두릅도 내 것은 절대 아니다.


꼭 밭에서 자라는 것만이 소유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땅 지리산에 자라는 것은 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마을 사람들의 양식이고 재산이고, 생명이다.


 


끝없이 이어진 논둑길 끝의 커다란 나무 밑에 정자가 있다.


50분 정도 걸었으니 쉬웠다 가자.


정자에는 이미 마을 사람들이 쉬고 있기에 정자 뒤편에 있는 철제 평상 위에 길게 누워 하늘을 보니


파란 하늘이 내 몸으로 그대로 쏟아 질 것 같다.


평상 위에는 베개 대신 쓰이는 목침 하나가 거의 썩어 가고 있고


그렇게 쉬다 보니 문득 인생의 긴 시간을 달려오신 마을의 할아버지께서 옆에 계신 것을 보고


반갑게 인사한 후 길을 떠난다.


 


이정표는 다시 논둑길을 가르킨다.


지난 해 추수하고 남은 벼를 포장해 놓은 커다란 하얀 비닐 덩어리들이 물이 가득 흐르는 수로 옆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은 비닐 옆구리가 터져 낟가리들이 썩어가는 것도 보인다.


 


화월마을을 지나 관점마을로 가는 곳에는 유독 버려진 집들이 많다.


주민들이 떠난 뒤 온기를 잃어 버려 허물어지는 흙벽돌로 집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 몸도 온기를 잃으면 저렇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폐가 수준의 마을 구석 외양간에 소 몇 마리가 어둠 속에서 나그네를 두려운 듯 바라보고


음매 거리며 담 뒤로 숨는다.


 


집들만 폐가가 아닌 듯, 마을 경로당에도 문을 굳게 닫아 놓고 인적이 없다.


아마 냉방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노인들이 그 안에 있을 수 가 없어 마을의 정자로 나가셨나 보다.


 


사람도 시간도 잠들어 있는 마을길을 지나 좁은 산길로 접어 드니 제일 먼저 대나무 숲이 눈에 가득 찬다.


점점 많아지는 대나무 숲. 얼마나 빽빽하게 들어 서 있는지 대나무 숲 안에는 어두워 보인다.


통이 굵은 대나무를 쥐고 흔들어 보아도 위는 이리 저리 흔들리지만 밑둥은 꿈쩍도 않는다.


길 바닥도 떨어진 대나무 잎들로 푹신 푹신하다.


 


대나무 숲길을 지나 마을로 걸어가는 길 양 옆에는 호박이 익고,


고추가 익고, 따고 그냥 둔 늙은 호박이 썩어가며,


담배 잎만큼이나 커다란 토란의 이파리들이 밭에 가득하다.


 


관점마을에서 이어지는 명사마을은 아까 지나온 마을하고는 사뭇 다른 마을의 모습을 보여 준다.


깨끗하게 단장된 집들, 넓은 정원, 잘 다듬어진 밭과 집 옆 개울들.


집들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집들이고 길도 잘 포장되어 있다.


그래서 혹시 유명한 사람을 가르키는 말의 ‘명사’인 줄 알았는데


어느 곳엔가 明寺라고 되어 있어 이 근처에 절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깨끗한 집들을 몇 채 지나는 아스팔트 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다 보니


이번에는 마을 입구의 큰 돌에 ‘참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새겨 놓고


양 옆에 재미있는 모양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말뚝을 세워 놓은 하존티마을에 도착한다.


첫 눈에도 멀리 보이는 마을이 잘 정돈되어 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마을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살면 아마 도시 사람들의 소득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대개 우리네 전통적인 마을이 이제까지 땅 싸움하며 서로 돕고 살지 않았기에


논도 삐뚤 삐뚤하게 배열되어 기계농업을 하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어느 논이나 이렇게 되어 있는 곳은 없다.


 


이제까지는 편하게 왔는데 하존티마을을 지나니 언덕이 이어진다.


언덕으로 올라가기 전에 마을 끝에 있는 정자에서 잠시 쉬며 정자의 천정을 보니 그 안에 제비집이 보인다.


인공적으로 만든 둥지가 아니고 개흙을 하나 하나 물어다 정성스럽게 지은 둥지라 더욱 반가왔다.


저런 것을 직접 본게 얼마만인가? 


 


어릴 때 우리 집 추녀 끝에 제비가 늘 집을 지었다.


어머니께서는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하면 제비가 놀라지 않게 우리보고 늘 조용히 하라 하셨고


언제 새끼들 소리가 들리는지 가끔 몰래 훔쳐 보기도 하셨다.


 


가파른 길로 올라가는 양 옆에 대나무 숲이 가득하다.


아마 숲을 철망으로 막아 놓은 것을 보아 일부러 키우는 대나무일 것이다.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쏴아~ 하고 비가 오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끝없는 대나무 밭 언덕을 올라가다가 잠시 쉬는데 아내가 질겁을 한다. 잠시 쉬는 사이에 모기들이 떼로 몰려 들었다. 


 


어제 민박집에서 저녁을 지낼 때만 해도 모기를 찾아 볼 수 없었는데


이 곳에는 낮에도 모기가 떼로 몰려 다닌다.


대나무밭과 모기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나는 팔에 토시도 하고 긴 바지를 입었기에 모기공격을 받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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