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후기

8코스 (운리 - 덕산)

작성자
보헤미안
작성일
2012-10-17 08:53
조회
24253

 


<< 사진은 블로그에 있습니다. 여기 사진올리기 힘들어서리..>>


 


지리산 둘레길 8코스 (운리 덕산)


 


간 밤에 일찍 잤는데도 잠자리가 포근해서 인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다. 바로 앞에 호수가 있기에 혹시 아침 물안개가 있지 않을까 하고 부시시한 눈으로 마당에 나갔더니 어제 같은 안개는 보이지 않고 잔잔한 청계 호수가 수채화 같이 정지되어 있는 듯 하다.


 


세면을 하기 위해 화장실로 가는데 비어 있어야 할 방 앞에 신발 두 켤레가 있다. 분명 주인 집 내외 신발은 아니고 도시인의 신발이다. 밤에 누군가 들어왔다. 신발의 모습을 보니 등산객은 아니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인가 보다.


 


주인이 밤 늦게 손님이 왔다고 알려 주며 아침을 같이 하라기에 식탁 앞에 마주 앉았는데 남자의 머리가 장발이고 여자도 늘씬한 도시여자다.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내 직장을 말하니 여자가 웃는다. 자기 옆의 남자도 나와 같은 계열회사 직원이란다. 그리고 오늘 나와 같이 8코스를 갈 예정이니 같이 가잔다.


 


금방 의기투합하여 오늘 코스가 약 4시간 거리고 나도 한 코스만 가면 되므로 조금 여유있게 출발했다. 주인 아줌마가 출발점까지 데려다 주니 그 곳에 다른 몇 팀이 막 출발하려고 길을 나서고 있다. 젊은 여자 두 명, 나이든 분 2, 그리고 또 한 명의 나이든 분.


 


우리 서로 모두 처음 보지만 스쳐 지나가듯이 인사하고 각자의 길을 간다. 혼자 가는 이는 빠른 걸음으로 순식간에 앞서 가지만 따라갈 생각은 없다. 길 가의 외양간에는 한 가족인 듯 송아지부터 늙은 소까지 모여 있고 동네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나와 같은 길을 가는 젊은 커플은 무척 종알대며 걸어 기분이 좋았다. 알고 보니 서로 취미로 만나오 오랫동안 사귄 애인관계네. 두 사람이 대화를 참 재미있게 하여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걷는다. 


 


코스모스가 이제 만발하기 직전이다. 조용한 임도에 가끔 밭일을 나가는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걷는다. 마을 길이라 감나무가 무척 많고 길에 떨어진 밤톨도 무수히 많이 보인다. 멀리 고요히 잠들어 있는 마을이 평화스러워 보이고 황금색 벌판이 푸른 산과 조화로운 배경을 이루고하늘은 맑아 걷기에 최고 좋은 날이다.


 


마을 뒷산에 태풍으로 인해 길이 무너졌는지 여기 저기 보수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이고 어느 곳에서 일하는 분은 수해현장이 수해를 입었다며 지나가는 우리들에게 얘기하지만 힘들어하는 기색보다는 사람을 반가워 하는 눈치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날씨가 좋아서인지 금방 땀이 나기에 자켓을 벗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다시 길을 떠난다. 계속되는 언덕길, 이미 안내 팜프렛에 이러한 언덕이 표시되어 있기에 어느 정도 선까지는 올라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조금은 힘이 든다.


 


운리에서 떠난 사람들이 조금 힘들다고 느껴질 때 쯤에 보이는 정자. 짐을 풀고 커피 한 잔을 나누어 마시는데 뒤따라 온 나이든 두 분이 합세하며 복숭아를 깍아서 나누어 준다. 우리가 드려야 하는데 나이 많은 분이 먼저 친절을 베푼다.


 


걷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다 올 초에 내가 암에 걸려 수술했다 하니까 나이든 분 두 분 중 얼굴 혈색이 좋아 보이는 분이 자기도 6년 전에 암 3기에 걸렸었는데 당시에는 낚시를 좋아하다가 앞에 있는 친구를 만나 이렇게 걷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암이 모두 완치가 되었다 한다.


 


우리가 먼저 쉬었으니 먼저 출발한다. 멀리 지리산의 산자락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이런 맛에 지리산이 좋다. 골짜기마다 마을이 보이고 희미한 산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산이 많은 나라의 민족들은 게으르면 결코 살아갈 수 없으리라.


 


어디까지 올라갔던가. 어느 순간부터 내가 좋아하는 숲길이 이어진다. 그것도 사람만이 다닐 수 있는 능선길. 아래로는 높은 나무들이 즐비하고 위로도 키가 큰 나무들이 우리들을 굽어 보고 있다. 이제껏 지리산 둘레길을 다니면서 이렇게 멋진 길을 보지 못했다. 비록 이런 숲길이 있어도 그 다지 길지 않았는데 이 곳은 이런 길이 끝이 없다. 이게 웬 호강이냐.


 


나무 그늘들이 우리가 걷는 길에서 춤을 추고 있다. 나무 틈 사이로 비치는 햇살도 정겹고 오랜 만에 내 카메라로 내 사진을 담아 본다. 혼자 다니다 보면 커브 길의 볼록렌즈 외에는 내 모습을 보지 못하는데 오늘은 사진 호강 좀 하게 생겼다.


 


다음 주가 추석인지라 길가의 산소들은 거의 모두 잘 다듬어져 있는데 어느 한 곳의 산소가 거의 봉이 무너지고 묘석만 보이는데 묘석의 년도가 임오년이니 따져 보니 지금부터 10년 전은 아니겠고 70년 전일 것이다. 이 산소가 얼마나 더 오래 갈까?


 


산 언덕의 커다란 돌 틈에서 작은 계곡 물이 쏟아 진다. 나무도 물도 길도 같이 가는 사람들도 모두 마음에 든다. 멀리 산 아래 마을을 보니 우리가 산의 6부 능선쯤을 걷는 것 같다. 가끔 태풍에 가로 누운 나무를 톱으로 잘라 길을 터 놓은 모습도 보인다. 아마 그런 태풍 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둘레길의 전 코스를 급히 정비하는 것 같다. 나무를 자른 톱밥이 아직 하얀 것으로 보아 이 나무는 며칠 전 태풍에 무너졌을 것이고 잘라진 나무의 한 편은 건너편 다른 나무에 간신히 걸쳐 있다.


 


그렇게 행복한 길이 끝까지 이루어 지길 바라는데 그 끝이 좁아 질 때 쯤에 더 큰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제법 큰 계곡물이 흘러내리는데 물의 색깔이 투명하다 못해 맑은 유리알 같다. 도무지 이 곳을 그냥 지나 칠 수 없어 우리 모두 등산화를 벗어 맨 발로 물에 담그니 물이 차가운 정도를 넘어 발이 시렵다. 한 참을 놀고 싶지만 우린 나그네일 뿐이다. 다시 길을 걷는다.


 


이제 마근담 까지 2Km 정도 남았다고 이정표가 말해준다. 이젠 둘레길 곳 곳에 이런 거리 이정표를 비치해 놓았다. 어제 올라 온 7코스에 이런 이정표 좀 붙여 놓지.. 그랬으면 포기할 사람도 있었겠지;?


 


작은 언덕이 몇 개 지나쳤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이제 정확한 목표 거리가 정해졌으니 서둘지 않아도 된다. 거의 평지에 가까운 숲길을 한 참 걷다 보니 문득 저 앞에 차가 보인다. 차가 여기까지 들어와? 그런데 그 차는 더 이상 이 쪽으로 오지 못하게 작은 계곡하나가 놓여 있다.


 


그렇다면 저 차 있는 곳이 길의 끝일 것이다. 차 옆으로 해서 조금 내려가니 숲 길이 끝나고 임도가 시작되는데 바로 그 시작되는 곳에 내가 그토록 다시 오고 싶었던 마근담 펜션이 보인다.


 


지난 해 여름 지리산에 입산 금지가 내릴 정도로 비가 너무 많이 왔을 때 덕산에서 이 곳까지 걸어 올라와서는 비가 너무 많이 와 더 가기를 포기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때 더 진행하기로 욕심부렸다면 아마 오도 가도 못할 상황이 생겼을 수도 있었겠다.


 


마근담 펜션부터는 죽 내려가는 길이다. 내려가면서 어쩌다 보니 업무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중단시켰다. 이 곳에서 업무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마근담에서 내려가는 길의 왼쪽에는 맑은 계곡물이 넘쳐 흐른다. 어쩌면 저렇게 투명할까?


 


경부고속철도를 공사할 때 길이 뚫리면 천성산의 도롱뇽이 사라진다고 몸으로 공사를 막았던 한 비구니로 인해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입었는데 도롱뇽은 청정지역에만 사는 동물이다.


그 도롱뇽이 얼른 내 눈에 뜨인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어디론가 막 도망가다가 자기 몸 색과 비슷한 돌담 사이에 붙어서 꼼짝하지 않는다. 아마 나름대로 스스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리라.


 


지난 해 이 곳을 올라 갈 때도 무수히 많은 감나무들을 보았는데 때가 때인지라 지금은 지천의 감나무에 감이 주렁 주렁 열려 있다. 그 중 어떤 감은 익은 채로 바닥에 떨어 졌는데 온전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어차피 상할 것을 주워 껍질을 벗겨 입에 넣으니 꿀맛이다. 우리가 주워 먹은 감은 겨우 하나에 불과한데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들이 땅에 떨어져 썩어가고 있다. 저 많은 감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맑은 계곡 옆을 지나치는데 문득 검은 재두루미 한 마리가 아래 계곡에서 급히 윗 쪽 계곡으로 날아간다. 급히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이미 멀리 날아가 버린 뒤였다.


 


길의 오른 쪽에 정원을 멋지게 가꾼 별장이 보인다. 정원에 놓여 있는 각종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고가의 암석들로 보인다. 아마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의 별장일 것이다.


 


드디어 긴 여정을 거쳐 속세로 내려왔다. 마을 사람들이 교자상을 차에 싣고 다니는 장삿군의 트럭 옆에 몰려 흥정하고 있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정표가 이상하게 길이 아닌 곳으로 가게 되어 있으나 인근에 남영 조식 선생님의 기념관이 있어 잠시 앉아 쉬고 길을 가다가 저쪽 개천 옆에 보기 좋은 소나무 숲길이 있어 발길을 옮기는데 그 가운데 잘 다듬어진 잔디가 있다. 골프장도 아닌데 잔디 곳곳에 번호표가 붙어 있어 게이트볼장 같지만 이상하게 이런 잔디밭에서 게이트 볼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솔밭 사이로 잘 다듬어진 길을 걸어가 지난 해 식사했던 보현갈비를 찾아 갔다. 여전히 그 곳의 시골 음식은 맛이 있고 떡갈비를 싸 먹으라고 주는 상추도 밭에서 막 따 온 것같이 뿌리째 건네 준다.


 


오늘 같이 동행해 준 젊은 커플에게 선임자로서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진주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택시를 타러 갔던 커플의 아가씨가 가다 말고 커피를 사서 내 손에 쥐어 준다.


 


고마운 사람들. 


 


길이 좋다. 자연이 좋다. 사람이 좋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음 길을 꿈꾼다.

facebook twitter google
전체 0

전체 757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574
비밀글 스탬프북신청 (1)
eueu35 | 2020.10.02 | 추천 0 | 조회 6
eueu35 2020.10.02 0 6
573
비밀글 둘레길 스탬프 포켓북 신청합니3ㅏ (1)
이송이 | 2020.09.25 | 추천 0 | 조회 4
이송이 2020.09.25 0 4
572
다시 찾은 둘레길 (1)
janggilsankr | 2020.07.28 | 추천 0 | 조회 21981
janggilsankr 2020.07.28 0 21981
571
지리산둘레길 자료요청합니다. (1)
khroh2 | 2020.07.28 | 추천 0 | 조회 21897
khroh2 2020.07.28 0 21897
570
비밀글 둘레길 자료와 스탬프북 신청합니다 (1)
kyon0124 | 2020.07.17 | 추천 0 | 조회 4
kyon0124 2020.07.17 0 4
569
비밀글 지리산 둘레길 자료요청 (1)
김건희 | 2020.07.11 | 추천 0 | 조회 6
김건희 2020.07.11 0 6
568
둘레길 6개코스 걸어본 소감
선우환련 | 2020.05.31 | 추천 4 | 조회 23539
선우환련 2020.05.31 4 23539
567
(사)백두대간 평화 산줄기 창립총회 초대합니다.
양민호 | 2020.05.29 | 추천 0 | 조회 23652
양민호 2020.05.29 0 23652
566
비밀글 지리산둘레길 전체 지도와 안내서가 필요합니다. (1)
foolkej | 2020.05.19 | 추천 0 | 조회 8
foolkej 2020.05.19 0 8
565
비밀글 현재 지리산 둘레길 이용할 수 있나요?
rho0800 | 2020.05.01 | 추천 0 | 조회 4
rho0800 2020.05.01 0 4
564
둘레길 표시목 수정요청 (1)
서재탁 | 2020.05.01 | 추천 0 | 조회 23729
서재탁 2020.05.01 0 23729
563
지리산 둘레길 이용 (1)
김수진 | 2020.04.28 | 추천 0 | 조회 25911
김수진 2020.04.28 0 25911
562
지리산 둘레길 자료 요청합니다 (1)
sopia0722 | 2020.04.27 | 추천 0 | 조회 23637
sopia0722 2020.04.27 0 23637
561
비밀글 둘레길 자료 부탁드립니다 ^^ (1)
wsnoh2003 | 2020.04.24 | 추천 0 | 조회 4
wsnoh2003 2020.04.24 0 4
560
둘레길 이용 (1)
이한수 | 2020.04.07 | 추천 0 | 조회 26030
이한수 2020.04.07 0 26030
559
지금 지리산 둘레길 할수있나요 (1)
대학생 | 2020.04.02 | 추천 0 | 조회 24421
대학생 2020.04.02 0 24421
558
지리산둘레길 들꽃 정보-주천~운봉구간
master | 2020.03.16 | 추천 0 | 조회 26763
master 2020.03.16 0 26763
557
둘레길자료요청합니다 (1)
김춘형 | 2020.03.15 | 추천 0 | 조회 24634
김춘형 2020.03.15 0 24634
556
남,북 백두대간 국제 트레일 조성에 동참을 바랍니다.
양민호 | 2020.02.16 | 추천 0 | 조회 27556
양민호 2020.02.16 0 27556
555
지리산에서 사기꾼을 만나다 - 1
지리산하 | 2020.02.07 | 추천 0 | 조회 27386
지리산하 2020.02.07 0 27386